서리풀나무집

서초동은 옛날 이곳에 서리풀이 무성했다 하여 ‘서리풀이’, ‘상초리(霜草里)’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되었다. 우면산 물이 이리저리 서리어 흐르고, 서울교대에서 동쪽 경부고속도로에 이르는 부근에 있었으며, 장마가 지면 마을 어귀까지 물이 끼어 서리곤 했다고 한다. 부지는 이곳 인근에 위치한다. 강남의 대부분은 아파트로 재건축되거나 다세대, 다가구촌이 되었지만, 큰 길에서 제법 떨어진 안쪽 언덕에 입지하다보니 변화로부터 비껴나 주변이 비교적 단독주택 위주의 정온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주택은 도시를 구성하는 건축물 중에서 가장 작은 단위지만, 동시에 그것은 하나의 작은 도시고 소우주다. 공유하는 가치들이 모여 동네가 되고, 동네가 모여 도시가 된다. 건축주는 첫 만남에 골판지를 이용해 층별로 분리된 모형을 만들어와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는데 그것은 마치 생각을 수평적으로 배열하고, 수직으로 쌓아 올린 블록과도 같았다. 말이 사물이라고 생각한다면, 블록처럼 쌓아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삶과는 확연히 다른 미래, 즉 남편과 아내, 아들 각각의 독립적인 영역이 담겨있는 내용이었다. 설계는 개인의 영역을 구분하고 관계의 밀도를 섬세하게 조정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집의 중심을 이루는 거실은 없다. 손님을 맞기도 하는 공동의 공간은 식당이고, 음악감상이나 연주를 위한 홀과 서재, 등으로 재편된다. 이렇게 분리되거나 연결된 공간들이 배열되고 적층되어 집이 되고, 마을을 이루는 단위가 된다.

집은 길로부터 안쪽을 보호하면서 남서쪽을 튼‘ㄱ’자로 배치된다. 남측과 서측에 높은 담은 중정주택의 성능과 인상을 갖는다. 남측 정원은 접이문을 열면 길과 통합된다. 길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면은 다소 패쇄적인 인상을 갖지만 후퇴된 면에는 내부를 암시하는 노출 목구조와 작은 정원이 가로 풍경에 활력을 준다.

자유로운 평면, 단면

적층된 블록은 미래에는 퍼즐처럼 변화해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현재의 프로그램을 담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변화에 유연한 구축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흔히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형태든 기능이든 각각의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반대로 형태가 기능 또는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서리풀나무집은 철근콘크리트조와 목구조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건축이다. 1단계의 구성은 2개 층 높이로 비워진 불소수지로 마감된 철근콘크리트구조 단단한 외피이다. 2단계는 2층 바닥슬라브를 구성하는 중목의 장선Joist이다. 외벽에서 반대편 외벽에 이르는 장선은 자유로운 평면의 기반이 된다. 1,2층의 경골목구조 벽들은 현재의 쓰임에 반응해 구성되지만 구조가 아니므로 변화에 따라 언제든 재구성 된다. 벽보다는 덜 유연하지만 2층 바닥도 쉽게 비워지거나 채워질 수 있다. 자유로운 평면과 더불어 단면도 가능하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와 목구조를 융합한 하이브리드 공간은 가변적 공간구조와 더불어 재료와 구축적 공간이 이루는 고유함을 경험하게 하는 장소이다.

건축주는 이 집을 짓는 과정과 이후의 서리풀나무집 생활을 통해 삶의 변화를 꿈꿔왔다. 공간을 만드는 것은 건축가의 영역이지만 건축주가 공간의 변화에 개입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보고 건축가는 가변적인 새로운 질서의 여지를 남겨둔다. 미래의 공간 활용에서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변화가 가능하도록 남겨두었다.